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린스턴 전투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영국군 공식 기록은 전사 18명, 부상 58명, 실종 및 포로 200명이지만 워싱턴을 비롯한 대륙군 장교들은 최소 100명 이상이 전사했다고 주장했다. 한 민간인 목격자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영국군 전사자만 24명이라고 증언했다. 현대 역사가들은 대륙군 측 기록이 사실에 가까우며 최소 50명 이상이 전사했다고 본다. 또한 해밀턴 부대에 의해 194명이 포로로 잡혔는데, 이들은 프린스턴에 잠시 억류되었다가 석방되었다. 또한 이들 외에도 80~100명 이상의 포로가 존재했다는 주장이 있다. 대륙군은 휴 머서 준장과 하슬렛 대령을 비롯해 25~44명이 전사하고[* 워싱턴은 6~7명의 장교가 전사했다고 기록했으나 10명, 14명이 전사했다는 기록도 발견되었다. 전사자 중 장교의 비율이 매우 높았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.] 40여 명이 부상당했다. 워싱턴은 프린스턴 전투에서 승리한 뒤 콘월리스의 추적을 피해 모리스타운으로 철수했다. 콘월리스는 프리스턴을 되찾은 뒤 적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고 전군을 이끌고 뉴욕으로 철수했다. 이렇게 미국 독립 전쟁은 장기전으로 치달았고, 프랑스, 스페인 등 유럽 열강은 미국 민병대의 활약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